입력 : 2013.12.19 06:00

"다음 질의할 의원은,OOO 의원께서 질의하겠습니다"식 문장은 안돼
'주어-서술어 호응',말할 땐 느슨하게 해도 글에선 엄격하게 맞춰야

⑬ 말하듯 쓰다가 '非文'될 수 있다

지난 번엔 비문(非文), 즉 문장이 안 되는 문장의 사례로 형용사·동사에 적합한 조사(토씨)를 잘못 붙이거나, 특정 부사어와 짝을 이뤄 써야 하는 후속 표현을 잘못 쓰는 경우를 살펴 봤습니다. 틀린 문장을 쓰기 않기 위해서 우리가 또 주의해야 하는 것은 주어와 서술어가 서로 호응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문을 봅시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이제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진실한 국민으로 살아갈 것은 틀림없다.>

문장을 읽어 보면 뜻은 알겠는데 뭔가 이상합니다. 주어와 서술어가 서로 호응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의 주어는 ‘확실한 것은’이므로 ‘~이다’라는 서술어가 나와야 문법에 맞는데 이 문장은 그렇지 못합니다. 또한 앞의 ‘확실한’이나 맨 뒤의 ‘틀림없다’나 표현하려는 뜻은 비슷한 말인데 불필요하게 중복되어 있기도 합니다. 앞의 ‘확실한 것은’을 삭제하여 <그들이 이제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진실한 국민으로 살아갈 것은 틀림없다.>로 하면 흠 없는 문장이 됩니다. 굳이 ‘확실한 것은 ~ 이다’라는 뼈대를 살리고 싶다면 <확실한 것은 그들이 이제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진실한 국민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도로 고쳐도 됩니다. 두 가지 사례를 더 봅시다.

<포트 후드에서는 지난 2009년 11월 이 기지에 근무하던 정신과 군의관 니달 하산 소령이 총기를 난사해 미군 장병 12명과 민간인 1명 등 13명이 사망하고 32명이 부상한 사건이 발생했던 곳이다.>
<역사 자료 보존은 종이의 산화를 막아주는 중성지 박스와 국산 오동나무 가구를 구입해 전량 보관됐다.>

위의 두 문장은 모두 주어·서술어 간 호응이 되고 있지 못합니다. 첫째 문장은 서술어 ‘~이다’로 끝나므로 문장의 앞 부분에 ‘~은(는)’이라는 주어가 있어야 하는데 없습니다. 장소를 말해주는 ‘~에서는’이라는 부사어가 있을 뿐이죠. 이 긴 문장의 중간 부분을 걷어내고 앞뒤만 추려내면 문제점이 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포트 후드에서는 ~ 사건이 발생했던 곳이다.> 말이 안 되죠? 바로잡으려면 <포트 후드 ~ 사건이 발생했던 곳이다.>라고 하면 됩니다. 아니면 ‘포트 후드에서는~ 발생했다.>라고 고쳐도 됩니다.
두 번째 문장 역시 앞-뒤 부분만 추려내 보면 <역사 자료 보존은 ~ 보관됐다.>이니 틀린 문장입니다. ’사료 보존이 보관됐다‘ 니 말이 안 되지요. <역사 자료는 ~ 보관됐다> 로 고치면 해결됩니다.

사실 우리가 말할 때는 주어-서술어 호응이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글을 쓸 때처럼 문법을 꼼꼼하게 고려하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요즘 TV 프로그램마다 출연자들의 말을 화면에 자막으로 넣는 게 유행이지만, 많은 자막들은 말 속의 비문들을 고치느라 바쁩니다.

국회의원들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원들이 의사당 안에서 발언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속기록(速記錄)’을 읽어 보면 의외로 여기저기 비문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영화가 이렇게 중흥기를 맞이한 것은 김대중 국민의 정부 시절에 세칭 가위질을 하지 않으면서 실제로 ‘JSA’도 만들어질 수 있었고, ‘웰컴 투 동막골’도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역시 무언가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 이상한 문장입니다. ‘한국영화가 이렇게 중흥기를 맞이한 것은’으로 시작했으니 그 이유를 말해 주는‘~ 때문입니다’나 그 시기를 말해주는 ‘시절입니다’정도의 서술어가 와야 하는데, 그런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뜻을 살리면서 문법에 맞게 고치려면 다음과 같이 두 문장으로 나눠야 할 듯합니다.

<한국영화가 이렇게 중흥기를 맞이한 것은 김대중 국민의 정부 시절에 세칭 가위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 정책을 펴면서 실제로 ‘JSA’도 만들어질 수 있었고, ‘웰컴 투 동막골’도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국회 본회의 장면. 이 곳에서 오가는 수많은 발언 속에도 문장으로 옮겨놓으면 앞뒤 호응이 맞지 않는 비문(非文)들이 가끔 있다. 누구나 주의하지 않으면 비문을 쓸 수 있음을 알수 있다.
국회 본회의 장면. 이 곳에서 오가는 수많은 발언 속에도 문장으로 옮겨놓으면 앞뒤 호응이 맞지 않는 비문(非文)들이 가끔 있다. 누구나 주의하지 않으면 비문을 쓸 수 있음을 알수 있다.
물론 연설이나 회의에서 하는 말 중에는 ‘비문’이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던 어느 위원장이 “다음 질의하실 의원님은 ○○○의원님께서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중계를 통해 들은 적 있습니다. 물론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다음 질의하실 의원님은 ○○○의원님입니다. 질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두 문장으로 해야 할 것을 하나로 뒤섞은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회의 진행에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정도의 극히 간단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글에서 주어·서술어 호응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읽는 이에게 혼란을 줍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음정·박자 틀린 노래와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 글 쓰기를 지도해 보면 논설문은 흠 없이 잘 쓰던 학생이 수필을 쓰면서 비문을 쓰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구어체로 말하듯 쓰다 보니 말할 때 처럼 호응에 관해 너무 느슨하게 생각하다 실수가 빚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표현을 위해 말하듯 쓰는 것은 좋은 태도이지만, 문법에 틀리지 않으려는 긴장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주어·서술어 호응을 맞추지 못하는 실수들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한 문장을 시작할 때의 생각을 끝낼 때에 깜빡 잊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가령 맨 첫 번째 예문의 경우, 필자가 ’확실한 것은~‘이라고 문장을 시작할 때는 ’확실한 것은 ~ 이다‘라는 형식의 문장을 쓰려는 것이었겠죠. 그런데 ’그들이 이제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진실한 국민으로 살아갈 것은 ~‘이라는 긴 부분을 쓰는 동안에 ’확실한 것은‘이 주어라는 사실을 잠깐 놓치고 ’~할 것은 틀림없다’로 마무리한 것입니다.

특히 위의 예문들처럼 문장의 길이가 너무 길 때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안 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주어·서술어 사이의 거리가 너무 먼 탓에 둘 사이의 긴밀한 연결이 풀리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확실한 것은 그들이 ~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이다>라는 문장과 <그들이 ~ 살아갈 것은 틀림없다>라는 두 문장의 머리와 꼬리가 잘못 접합돼 기형적 문장이 되어 버린 것이죠. ‘경제개혁을 빨리 이루도록’과 ‘경제 개혁이 빨리 이뤄지도록’ 중 어느 표현을 쓸까 생각하다 ‘경제개혁을 빨리 이뤄지도록’이라는 틀린 문장을 쓰게 되는 과정과도 비슷합니다.
결론적으로, 앞뒤 호응이 되지 않는 비문을 막는 방법 역시 지난 회에 말씀드린 것과 비슷합니다.글을 쓴 뒤에 자신의 글을 꼼꼼하게 읽어 보면서 부자연스런 곳이 없는가를 검토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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