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17 05:30
스탠딩 코미디에 뛰어났던 코미디언 고(故) 김형곤씨 아시죠? 그가 1999년 자신의 코미디 인생을 결산한다며 대학로 무대에서 가진 공연의 제목은 ‘여부가 있겠습니다?!’였습니다. 이 제목 보자 마자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부(與否)가…’라는 우리말 표현은 반드시 ‘있겠습니까’라는 의문형으로 이어져야 호응이 맞는데 이걸 ‘있겠습니다’로 엉뚱하게 썼기에 우스꽝스럽게 된 것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다’ 처럼 앞뒤가 안 맞는 문장을 ‘비문(非文)’이라고 합니다. 문장이 아니라는 것이죠. 글 쓰기를 배우려는 모든 분들은 비문을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코미디언은 웃기려고 일부러 비문을 썼지만, 개그를 하려는 의도가 아닌데 앞뒤가 안맞는 글을 쓴다면 치명적이죠.
1999년 열렸던 고 김형곤의 개그 인생 결산 공연을 알린 신문 기사. ‘여부가 있겠습니다’라는 비문(非文)을 제목으로 삼았다. 개그맨이 일부러 쓴 비문은 유쾌한 웃음을 안길수 있지만 실수로 비문을 쓰면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1999년 열렸던 고 김형곤의 개그 인생 결산 공연을 알린 신문 기사. ‘여부가 있겠습니다’라는 비문(非文)을 제목으로 삼았다. 개그맨이 일부러 쓴 비문은 유쾌한 웃음을 안길수 있지만 실수로 비문을 쓰면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옳바르다’ ‘어떠케’ ‘순대국’처럼 맞춤법에 틀리게 썼다고 해서 비문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맞춤법이 틀렸을 뿐이죠. 비문이란 하나 하나의 단어들은 흠잡을 데가 없는데, 문장의 앞뒤 연결이 올바르지 않아 문법에 어긋나는 문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짝이 안 맞는 말끼리 잘못 이어붙여진 것입니다.

비문이 되는 경우에는 어떤 유형들이 있을까요. 문법 이론을 다룬 글을 보면 의외로 그 종류가 많습니다. 가령 ‘엄마는 어제 동창회에 가겠다’라는 문장은 ‘어제’라는 과거 시제를 써 놓고 ‘가겠다’라는 미래 시제의 동사를 썼으니 틀렸다며 비문의 예로 든 글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정상적인 사고력과 신체 컨디션을 가진 사람이 ‘어제 가겠다’라는 식의 비문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정말로 주의해야 할 비문의 유형들로는 ▲동사나 형용사에 맞는 ‘조사(助詞)’를 잘못 쓰는 경우, ▲특정 부사나 명사에 따라 붙어야 하는 서술어를 잘못 쓰는 경우,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이 맞지 않는 경우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우선 동사·형용사에 맞는 조사, 즉 토씨를 제대로 쓰지 못해서 비문이 된 경우입니다.

<경제 개혁을 빨리 이뤄지도록 우리는 모두 마음을 모아야 한다. >
<북한은 남북정상회담 장소를 서울로 하자는 우리의 제안을 거부감을 나타냈다.>

첫 번째 문장에서 ‘이뤄지도록’은 수동형이므로 ‘경제 개혁’이라는 주어에는 ‘이’라는 조사가 붙어야 하죠. 두 번째 문장에서 ‘거부감을 나타냈다는’ 표현은 ‘~에 거부감을 나타냈다’로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위 문장들은 ‘경제 개혁이 빨리 이뤄지도록…’ ‘…우리의 제안에 거부감을 나타냈다‘로 고치면 됩니다. 또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조사를 그대로 살리고 뒤에 따라오는 동사의 형태를 바꾸어도 됩니다. 즉 ’경제 개혁을 빨리 이루도록 …‘ ’…우리의 제안을 거부했다‘로 각각 고쳐도 비문에서 벗어나 옳은 문장이 됩니다

여기서 눈치 챌 수 있듯, 실수로 비문을 쓰게 되는 까닭은 두 가지 방식의 표현을 뒤섞었기 때문입니다. 즉 첫 문장의 경우 ’경제 개혁을 빨리 이루도록…‘과 ’경제 개혁이 빨리 이뤄지도록…‘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둘이 뒤섞여 ‘경제 개혁을 빨리 이뤄지도록’이라는, 앞뒤 안 맞는 문장이 된 것이죠. 두 번째 예문 역시 마찬가지 이유로 뒤엉켜 틀린 것입니다.

사실 비문이 되지 않도록 쓰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 일상 생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공공 장소 게시문들 중에도 비문들이 가끔 발견됩니다. 심지어 어느 전직 대통령도 현직에 있을 당시 유명 인사의 빈소를 찾아 방명록에 남긴 글이 비문이라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대통령은 ‘문학의 큰 별께서 고히 잠드소서”라고 썼는데 ‘고이’를 ‘고히’로 쓴 것도 정확하지 않지만, ‘큰 별께서~ 잠드소서’가 더 문제였습니다. ‘큰 별이시여, 잠드소서’라고 했어야 정확한 것이죠. ‘잠드소서’라는 서술어는 무언가를 기원(祈願)하는 말인데, 우리말에서 기원하는 말의 앞에는 그 대상이 되는 존재를 외쳐 부르는 말이 와야 하니까요.

또한 특정한 부사어나 주어의 경우 우리말 용법상 따라나와야 하는 뒷말의 형태가 제한되는데, 이 짝이 제대로 안 맞아 비문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이 글의 앞에서 언급한 김형곤 코미디의 제목 ‘여부가 있겠습니다’가 대표적인 사례죠.
특정한 표현과 짝을 이뤄 써야만 하는 우리말 부사들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왜냐하면’으로 시작했으면 ‘때문이다’로 끝나야 맞고, ‘결코’ ‘전혀’ 같은 부사로 시작했다면 부정의 표현이 와야 합니다. 즉 <‘나는 오늘 지각을 했다. 왜냐하면 심한 감기가 걸렸다.> <결코 허용하겠다.> <전혀 아름답다.> 같은 문장들은 모두 비문입니다. 이런 문장들은 읽어 보기만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비단’으로 시작했으면 ‘아니다’라는 부정의 표현이 따라 와야 합니다. <그가 허풍을 떤 게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라는 식으로만 쓸 수 있는 것이죠.

물론 비문이라고 해도 독자가 짐작해 가면서 읽어 보면 대개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건 노래에 비유하면 음정과 박자가 틀린 노래입니다. 오디션 참가자가 음정-박자를 틀리면 실력의 우열을 따지기 이전에 그냥 중도탈락 아닙니까.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평가받을 글, 예를 들어 자기소개서나 작문 숙제에 비문을 썼다면 심사위원은 그 다음 부분을 굳이 읽어 볼 필요를 못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너무 무성의하고 성급하게 글을 쓴 게 분명하니까요.

어떤 형용사·동사에 어떤 조사가 붙어야 하는가, 어떤 부사와 어떤 표현이 짝을 이뤄야 맞느냐 하는 것을 제가 여기서 일일이 다 나열할 수는 없습니다. 평소 글을 읽으며, 문장을 써 보며 하나하나 그야말로 한국어 실력을 늘리는 수 밖에 없죠. 몰라서가 아니라 실수로 비문을 쓰는 일을 막으려면, 글을 다 쓴 뒤엔 소리내어 한 번 읽어 보면서 무언가 이상하고 어색한 부분을 잡아내 고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비문을 만드는 심각한 실수로는 주어-서술어의 호응을 잘못 맞추는 일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인지 다음 회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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