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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자 센 말띠 여자? 말띠해 출산율, 日 미신에 휘둘리나

입력 : 2013.12.14 08:08

내년 말띠해… 출산율 하락 우려



日 '적말띠의 저주'가 기원
1930년 연인 살해한 여성
적말띠 알려지며 속설 확산
일제강점기 한국에 퍼진 듯



한국, 말띠해마다 신생아 감소
1978년 출산율 14% 하락
말띠해 딸 출산 피하면서
1990년 男兒 출생 비율
예년보다 4% 넘게 올라

2014년은 유아용품 업계와 산부인과 의사들이 두려워하는 말띠해다. 색깔로는 청(靑)말띠해. 말띠해엔 출산 자체를 꺼리는 부부들이 늘어난다. '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속설 탓에 혹여 딸을 낳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말띠해엔 어김없이 출산율이 떨어졌다. 대신 남아(男兒) 출생률은 급등했다. 인구 그래프를 뒤흔드는 이 말띠 속설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말띠 속설은 일본에서 수입된 미신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반일(反日)정서가 강한 나라에서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왜색(倭色) 미신 때문에 출산율이 출렁거리는 소극(笑劇)이 벌어지는 것이다.

일러스트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우리나라 민속엔 '백말띠' '청말띠'를 따지며 금기시했다는 어떤 흔적도 없다고 한다. 다른 것을 볼 필요도 없이 조선시대 왕비 중에 말띠 여성이 적잖았다. 성종의 후비 정현왕후(임오생 1462년), 인조비 인열왕후(갑오생 1594년), 효종비 인선왕후(무오생 1618년), 현종비 명성왕후(임오생 1642년)가 모두 말띠였다. 만약 조선시대에 말띠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속설이 존재했다면, 조선 왕실이 '말띠 왕비'를 간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띠 동물에 색깔을 입혀 인간의 길흉화복이나 그해의 운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는 역사 자료에서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말띠 속설은 우리 민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역학자들도 말띠라는 것만으로 여자의 운명을 판단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 명리학의 발원지인 중국에서도 말띠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말띠 금기의 기원은 일본에서 생겨난 '적(赤)말띠의 저주'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적말띠의 저주란 붉은 말을 상징하는 병오년에 태어난 여성을 불운의 상징으로 간주해 차별하는 일본 사회 저변의 속설을 말한다. 예컨대 병오년이었던 1966년 일본에서는 유례없는 출산율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그해 태어난 아기는 136만명. 그 직전인 1965년에 182만명이, 이듬해인 1967년 194만명이 태어났다. 무려 50만~60만명이 덜 태어난 것이다. 전쟁이나 천재지변도 없었는데 출산율 그래프가 마치 도끼로 파낸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하와이의 일본 교포사회에서도 그해 출산율이 2~3%씩 격감할 정도였다. 당시 한창 베이비붐 중이었던 한국에서도 대도시를 중심으로 출산율이 급감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서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1966년의 현상에 대해 분석 논문이 쏟아졌다. 그중 후쿠오카 대학 다나카 교수 연구진은 적말띠 저주의 기원이 '1682년 에도(江戶) 시대 방화 혐의로 처형된 소녀 야오야 오시치(八百屋お七) 이야기'라는 설을 제시했다. 후일 가부키로도 만들어진 이 이야기 속에서 열여섯 살 오시치는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다. 한 동자승을 연모한 나머지 '집에 불이 나면 그가 나를 구하러 올 것'이라는 미망에 빠진 것이다. 불은 이웃으로 옮겨붙더니 급기야 에도(지금의 도쿄·東京) 전체를 삼키고 10만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오시치는 결국 화형당했다. 그 오시치가 병오년(1666년) 적말띠였다고 한다.

한낱 옛날이야기였던 오시치 이야기가 현실의 속설이 된 것은 1930년이라는 설도 있다. 당시 일본에서는 연인에게 집착하다 그를 살해하고 파멸한 한 여성의 사건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그 여성이 바로 1906년 병오년생이었다. 그때부터 병오년에 태어난 말띠 여자는 팔자가 사납다는 속설이 일본 사회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미 아칸소대 이정민 교수(경제학부)와 텍사스 오스틴대 박명호 교수(경제학부)는 '말띠해 한국사회 출산율 및 성별선호'라는 논문에서 "그간의 연구 결과를 종합해볼 때 일본의 적말띠 속설은 일제강점기 한국에 전파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적말띠 속설은 한국에서 말띠, 특히 백말띠(경오년)에 대한 저주로 변모했다.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다만, 적말띠 여성의 살인이 일어난 해가 공교롭게도 백말띠해(1930년)였고 그것이 한국사회에서 백말띠 속설이 생겨난 계기가 아닌가 풀이된다.

[그래픽] 말띠해 높아지는 남아 출생률
일제강점기 변형 수입된 말띠 금기는 20세기 후반 대한민국의 인구동향 그래프를 출렁거리게 만들었다. 백말띠의 해였던 1990년 한국에선 예년보다 4.1%나 더 많은 남아가 태어났다. 이정민 교수는 "이는 1만2500명의 말띠 딸이 사라진 결과"라고 설명한다. 불법 낙태나 출생신고를 늦추는 등의 비합리적인 행위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결과라는 것이다. 백말띠가 아닌 다른 말띠해인 1978년에는 출산율이 예년에 비해 14.2%나 떨어졌다. 2002년에도 비슷한 현상들이 나타났지만, 선별 낙태를 금지하는 강력한 법 때문에 그런 경향이 완화됐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말띠가 배척당하지만 중화권 특히 대만과 싱가포르에서는 호랑이띠를 꺼리는 경향 때문에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띠 미신은 왜 21세기에도 지속되는 것일까. 이는 미신의 '자기실현'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1906년생 적말띠 여성들은 대체로 가난한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적말띠라는 낙인 때문에 결혼 시장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불행 속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적말띠의 팔자에 대한 미신을 더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풀이다.

일본 1906년생의 사례가 부정적 자기실현이라면, 동북아시아의 '용띠 선호'는 긍정적 자기실현의 사례로 이야기된다.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 연구팀이 미국 이민사회를 분석한 결과, 용띠해에 태어난 동북아시아계 아이들의 학업 및 성취 수준이 높게 나타났다. 부모들이 높은 기대를 걸고 투자를 많이 한 것이 용띠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연구진의 결론이다.

☞말띠해 색깔의 유래는

60갑자는 ‘갑, 을, 병, 정, …’으로 나가는 10간과 ‘자, 축, 인, 묘, …’로 헤아리는 12지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10간은 각각 청·적·황·백·흑의 고유 색깔을 나타내기 때문에 청말띠, 백말띠, 적말띠 식의 구분이 가능한 것이다.
이길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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