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13 04:55
우리 밥상은 어느 때보다 풍성하다. 꿈에 그리던 흰쌀밥과 고깃국은 물론이고 임금님이 드시던 음식과 이국적인 열대 과일도 넘쳐난다.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목구멍에 풀칠하던 보릿고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우리 모두가 밥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먹거리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쌀밥과 설탕에 의한 탄수화물 중독도 걱정이고, 소금과 조미료가 범벅이 된 가공식품도 불안하다. 무공해 유기농 채소도 안심할 수 없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형편이다. 자연 그대로의 식품을 먹어야 한다는 실현불가능한 주장만 넘쳐난다.
풍요롭기는 하지만 골칫거리로 변해버린 밥상.
풍요롭기는 하지만 골칫거리로 변해버린 밥상.
골칫거리로 변해버린 밥상

우리가 밥상의 질(質)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8년 미국에서 활동하던 식이요법 전문가가 공영방송을 통해 채식을 강조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엔도르핀이라는 낯설지만 매력적인 과학 용어를 앞세운 메시지는 강렬했다. 소시지를 비롯한 육류 가공식품은 한 순간에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쓰레기’로 전락해버렸다.

1989년의 공업용 우지(牛脂) 파동도 잊을 수 없다. 어려웠던 시절 주린 배를 채워주었던 기적의 가공식품이었던 라면이 공포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결국 미국의 쇠고기 유통관리 제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정치적 사건으로 밝혀졌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깊은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식품기업의 과욕도 우리의 밥상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1993년 뒤늦게 조미료 시장에 뛰어든 맛그린의 노이즈 마케팅이 대표적인 사례다. 값싸고 편리한 MSG의 감칠맛을 즐기던 소비자에게 MSG가 ‘화학(인공)조미료’라는 광고는 메가톤급 폭탄이었다. 결국 엉터리 광고로 시장을 파고들려던 식품기업은 문을 닫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풍성해진 우리 밥상을 골칫거리로 만든 주범은 엉터리 과학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문가들의 과학을 앞세운 과격한 주장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그리워하던 거의 모든 식품이 사실은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3대 영양소가 모두 우리의 몸과 마음을 ‘중독’시키고, 600여 종이 넘는 낯선 식품첨가물이 모두 치명적인 독약이라고 야단들이다. 인류 문명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농경과 목축이 모두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자연이 제공해준 식품만을 소비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이 친환경과 친생명의 탈을 쓰고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식약처가 허가한 발효 산미증진제를 '화학조미료'로 둔갑시킨 1993년의 광고.
식약처가 허가한 발효 산미증진제를 '화학조미료'로 둔갑시킨 1993년의 광고.
기능성 식품에 대한 환상

놀라운 수준으로 발전한 식품과학과 식품산업도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가 식품의 의학적 기능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제 두부에는 레시틴이 들어있고, 바지락에는 베타인이 풍부하고, 양파에는 케르시틴이 포함되어 있고, 고추의 매운맛이 캡사이신 때문이라는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알파 토코페롤, 폴리페놀, 오메가 지방산, 안토시아닌과 같은 낯선 화학물질이 넘쳐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항산화물질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면 당장이라도 암에 걸리고, 목숨을 잃어버릴 것처럼 야단들이다. 현미와 같은 거친 음식과 검은색 식품이 만병통치의 영약이라는 주장도 엄청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언론에 등장하는 영양학자와 식품과학자들이 정말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다. 정부도 적극적이다. 의학적 효능을 강조하는 기능성 식품이 차세대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생존에 필요한 영양 섭취를 위한 식품과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의약품의 구분을 애매하게 만드는 엉터리 주장이 놀라운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레시틴이 어린이의 두뇌 발육에 좋고, 베타인은 우리 몸에서 노폐물과 독소를 배출시켜 주고, 케르시틴은 니코틴 성분을 배출시켜 준다는 엉터리 주장이 소비자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다. 인도의 대표적인 향신료인 카레가 어린이의 지능을 발달시켜주는 신비의 효능을 발휘한다는 명백한 거짓말에 속수무책으로 속아 넘어가는 주부가 적지 않은 형편이다. 무책임한 언론과 텔레비전 방송도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아무 것도 가리지 않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천연 약재와 식품을 앞세워 효과가 명백하게 밝혀진 현대 의학을 무력화시키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식품과 의약품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능성 식품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포스터.
식품과 의약품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능성 식품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포스터.
우리의 잘못된 식습관을 고쳐야

밥상에 불안을 느끼는 우리 자신에 대한 냉정한 반성이 필요하다. 자칫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잘못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음식에게 떠넘겨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쌀밥과 설탕, 소금과 첨가물, 그리고 육식과 가공식품이 우리의 건강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하는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과식과 편식을 피해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외면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운동량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영양을 섭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단맛과 감칠맛(우마미)을 지나치게 즐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과식과 편식의 잘못된 식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육식을 무작정 ‘서구식’이라고 폄하하는 것도 잘못된 인식이다. 육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유목민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신선하고 깨끗한 고급 식품만을 선택해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조리한 슬로푸드가 좋다는 주장도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극도로 비윤리적인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운 좋게 풍요로운 밥상을 즐기고 있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끼니를 거를 수밖에 없는 어려운 사람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패스트푸드나 품질이 나쁜 식품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도 생각보다 많다는 뜻이다. 우리의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라고 해서 허세를 부릴 권리까지 부여받은 것은 절대 아니다. 가공식품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켜 작은 이익을 챙기려는 일부 식품기업의 잘못된 마케팅 전략을 거부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과 소비자 운동도 필요하다.

우리가 생산한 먹거리는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식품 소비에 대한 윤리 회복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소비하는 먹거리는 모두 자연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명체의 희생으로 생산된 것이다. 그런 먹거리를 단순히 품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마구 폐기해버리는 것이야 말로 반(反)생명적이고 반(反)환경적인 일이다. 농부의 땀이 녹아있는 쌀 한 톨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실천해야 한다. 자연산 식품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경계해야 한다. 과학적 기술을 이용해서 식품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보존 기간을 늘이는 식품가공 기술은 우리가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윤리적 책임이고 의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우리 몸이 아직도 구석기 시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은 몹시 어설픈 것이다.
어렵게 생산한 식품의 소비에 대한 윤리회복 운동이 필요하다.
어렵게 생산한 식품의 소비에 대한 윤리회복 운동이 필요하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