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11 05:44

[사회학자 김경동·화학자 이덕환… 이 시대 '융합'에 대해 논하다]

대한화학회가 주는 '탄소문화상' 사회학자 김경동 수상 이례적
인문학에서 융합은 '합리성'… 분열 않고 질서 유지하는 것
과학에서 융합은 '問津'… 나루터 가기 위해 칸막이 거부
청년실업, 우리 세대 잘못 인정… 그들 위해 기존 갈등 풀어야

어수웅 기자
어수웅 기자

 지난 주 수요일(4일) 서울 을지로 한 호텔에서는 ‘탄소문화상 시상식’이라는 낯선 이름의 행사가 있었다. 대한 화학회(회장 강한영)가 주는 상인데, 특이하게도 상금 5000만원의 대상 수상자는 원로 사회학자였다. 학술원 회원이자 한국 사회학의 창시자(founding father) 중 한 명으로 불리는 김경동(77) 카이스트 초빙교수. ‘자연과학’이 ‘인문사회과학’에게 주는 상은 유례가 드물다.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장을 맡고 있는 이덕환(59) 서강대 교수와 김 교수를 함께 만났다.

―우선, 왜 탄소인가.

"탄소에 대한 오해가 있다. 급격한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는 탄소 잘못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 사실 탄소는 생명의 근원이다. DNA는 탄소 화합물이고, 광합성과 호흡도 탄소로 만들어진 유기물 덕분이다. 태양 에너지도 탄소를 촉매로 하는 핵융합 반응으로 생산된다. 세상에는 확인된 물질만 8000여종이 있는데, 이중 90%가 탄소화합물이다. 좁게는 탄소의 중요성과 가치, 넓게는 화학을 포함한 현대 과학을 제대로 알리자는 취지다."

―대한화학회가 사회학자에게 상을 주는 이유는.

"지금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은 심각하게 단절되어 있다. 사실 두 학문의 근본적 관심사는 같다. 인간은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게 핵심이다. 그런데 서로 외면한다. 융합이 키워드인 세상이지만, 말로만의 융합은 사절이다. 우리가 먼저 인문사회과학의 학문적 업적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자고 결심했다."(이덕환)

에피소드 하나. 1989년 당시 서울대 사회학과 김경동 교수는 장인상(喪)을 치르는 중이었다. 그런데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으로 당시 이상희 과학기술부장관이 찾아왔다. 상중(喪中)인 걸 알지만, 대통령이 참석하는 과학기술 자문회의의 기조 강연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몇 번을 고사하다 장례식장 인근 원서동의 한 여관에 들어가 밤샘 원고를 썼다고 했다. 지금과 달리, 그때만 해도 김 교수는 드문 통섭의 사회학자였다. 이 교수가 부연한다.

"일부겠지만, 인문사회계가 과학을 단순한 도구, 특히 돈 버는 도구로 보는데 자연과학계는 절망감을 느낀다. 과학은 ①과학지식 ②과학지식을 이용한 기술개발 ③과학적 사고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①은 인터넷에 넘쳐 흐르고, ②는 기술자에게 일임하면 된다. 그런데 ③의 중요성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김경동 선생은 사회학을 통해 과학적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전달해 주셨다. 현대 사회 발전과정에서 시민의 역할과 자세를 과학적 합리주의 차원에서 조명했다."

자동차회사도 ‘융합’을 광고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는 시대. 마침 2주 전 ‘북앤수다’의 주인공 역시 융합 프로젝트를 함께한 건축가 문훈과 소설가 배명훈이었다. 이들이 동의한 융합의 정의는 둘이 합쳐 새로운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수렴해 나가는 것. 이번 탄소문화상의 중요한 취지 중 하나 역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융합이다.

―사회학자가 보는 ‘융합’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시민 사회가 성숙해야 한다. 성숙에 필요한 덕목이 시민의 합리성이다. 문제는 우리 국민에게 감성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 심각한 사회갈등의 원인 중 하나도 그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과학적 합리주의다. 사회학은 그 대목에서 ‘융합’에 기여한다. 사회학의 핵심은 집단을 분열시키지 않고, 어떻게든 통합해서 질서를 유지하자는 거니까."(김경동)

김경동(왼쪽) 교수는“자연과학계에서 인문사회 분야에 이 상을 주셨다는 것이 더없이 소중하고 귀중하다”고 했다.‘ 탄소문화상’을 제정한 이덕환(오른쪽) 교수는“상대의 업적을 실체로서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융합”이라고 했다.
김경동(왼쪽) 교수는“자연과학계에서 인문사회 분야에 이 상을 주셨다는 것이 더없이 소중하고 귀중하다”고 했다.‘ 탄소문화상’을 제정한 이덕환(오른쪽) 교수는“상대의 업적을 실체로서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융합”이라고 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만연한 진영논리와 이분법의 극복도 ‘융합’의 역할일 것이다. 과학에서 구체적 사례를 든다면.

"탄소문화원에는 ‘문진 아카데미’라는 곳이 있다. 물을 문(問), 나루 진(津). 논어의 자로 편에 나오는 말로 ‘나루터 가는 길을 묻다’는 뜻이다. 융합의 자세가 문진이다. 술집이나 음식점 주인에게는 나루터가 최종 목표일지 모르지만, 그 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거쳐가는 곳. 문진은 진영논리와 칸막이 문화를 거부한다. 물론 이들이 하나가 되리라 믿는 건 비현실적이지만, 정체성을 확실히 다듬어서 그 안에서 풀어놓고 나눠 보자는 것이다."(이덕환)

"우리의 지난 1세기는 갈등의 연속이었다. 광복 이후 민족끼리의 전쟁을 시작으로 끝도 없다. 지금 우리 국민소득은 2만4000달러 수준. 선진국 문턱이다. 그런데 사회 갈등은 비슷한 소득규모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강도와 빈도다. 지금 우리는 사회의 질을 따져야 할 시점이다. 기준은 네 가지다. 사회경제적 안정, 응집, 자율성 이양(empowerment), 포용력"(김경동)

"넷 중 최소한 셋은 우리 자연과학이 보유한 것 같다. 과학기술은 경제적 안정성의 바탕이 되고, 새로운 과학적 지식은 응집의 구심점이 된다. 우리의 과학적 지식은 한 세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수준. 진영에 따라 다르게 취하는 선택적 진실이 아니다. 또 자연과학은 근대 이후 탈권위와 개방적 포용성을 보여주고 있다. 노벨상 받은 학자의 연구를 대학원생도 비판할 수 있을 정도니까."(이덕환)

통섭과 융합을 대화로 실천중인 원로·중진 학자에게, 이야기를 ‘청년실업’문제로 확장했다. 김경동 교수는 1968년 출범한 미래학회의 창립멤버. 성장이 정체된 한국사회에서, 갈등과 분열의 핵심 원인은 청년실업에 있다는 진단도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 ‘융합’의 제언은.

"인류사회에서 이같은 경험은 처음인 것 같다. 그 전에는 최악의 경우 옆 나라를 쳐들어가서라도 새로운 성장을 이뤄냈잖나. 세계화와 민주화 시스템 하에서는 그런 성장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처음으로 맞이한 도전이자 굉장히 어려운 도전이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문을 못열어주고 있다는데 100% 동의한다. 특히 우리 사회는 여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불필요한 갈등과 소모적 논쟁 때문에 능력이 있으면서 못하는 부분이 많다. 대기업이 현금을 쌓아놓고서 투자를 안하는게 사실 아닌가. 기성세대가 하루빨리 갈등을 해소시키고, 젊은 세대를 위해 우리 사회 자본을 쓰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김경동·이덕훈)

북앤수다+

지구상의 원소는 92종. 우주에는 114종의 원소가 있습니다. 아직까지 확인된 것만 그렇다지요. 동시에 탄소는 지구상에서 12번째로 분량이 많은 원소. 화학적 다양성 측면에서도 단연 최강입니다. ‘탄소’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달변에 다변이었습니다.

탄소문화상은 대상 이외에 언론상과 학술상, 그리고 기술상 분야가 있었습니다. 환경 전문기자인 조선일보 한삼희 논설위원이 언론상을, 도영규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 홍종인 서울대 화학과 교수, 문명희 연세대 화학과 교수가 학술상을, 건국대 융합신소재공학과 문두경 교수가 기술상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관련 분야에서 전문성과 전위성을 인정받은 언론인과 학자에게 돌아갔죠. 상금은 각 1000만원. 하지만 그 다섯 배에 달하는 상금 5000만원의 대상은 인문사회과학자에게 줬습니다. 어떤 소명의식도 느껴지더군요. 거의 단절과 격리에 가까운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과의 소통에서 우리가 먼저 발벗고 나서겠다는 의무감 같은.

‘탄소문화상’은 올해가 2회째입니다. 지난해 1회의 대상 수상자는 철학자인 박이문(83) 전 연세대 초빙교수. 과학기술 문명이 절정에 이른 21세기를 맞아, 우주 속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윤리적 관계를 맺는다는 인간중심주의 윤리의 정립이 선정 이유였습니다. 인류문명의 파괴는 우주적 삶과 생태계의 종말까지 올 것이라고 박 교수는 경고 했었죠. 인류중심적 세계관에서 생태학적 세계관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이 교수는 앞으로도 대상 수상자만큼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선정하겠다고 했습니다.

흥미로운 통섭의 사례 하나 더. 김경동 교수는 사회학자지만, 동시에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1982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연작시 ‘그림자와 웅덩이의 신화’  발표 이후,  시집‘너무 순한 아이’와 ‘시니시즘을 위하여’를 출간했고, 2005년 9월 월간 ‘문학사상’에 발표한 중편소설 ‘광기의 색조’ 3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습니다.

김 교수는 “자연과학계에서 인문사회분야에 이 상을 줬다는 것이 더 없이 소중하고 귀중하다”고 했다.

이번 탄소문화상이, 문학과 사회학과 자연과학과의 경쾌한 융합의 커뮤니케이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어수웅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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