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11 05:44
노석조 국제부 기자
노석조 국제부 기자
지난해 8월 이란에 갔을 때 테헤란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환전소에 들렀다. 공항에서 비자를 받으려면 현지 화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환전소에서 1달러를 내밀자 직원은 2만1000리얄을 주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두 배나 많았다. 이란으로 출발하기 전 환율을 알아봤을 땐 1달러가 1만1000리얄이었다. 그새 리얄 가치가 급락한 것이다. 핵개발 의혹을 받는 이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얼마나 강도 높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예상보다 많은 리얄화를 받아들고 순간적으론 '체류 비용을 반으로 줄일 수 있겠다' 싶어 흐뭇했지만 또 한편으론 '이란이 언제까지 이런 제재 압력을 견디며 핵개발을 고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테헤란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 야즈드 지역으로 가는 길에 옆자리의 노인과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는 좀 망설이다가 "정부가 왜 핵 문제로 나라 경제를 망가뜨리는지 모르겠다. 이란을 북한같이 고립시키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당시 대외 강경책을 추진하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처음 본 외국인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이란의 보통사람들까지도 느낄 정도로 영향을 끼치는구나 싶었다.

그로부터 10개월 뒤인 지난 6월 이란 대선에서 정치권에서 별 주목을 받지 못하던 하산 로하니가 승리했다. 현지 언론은 "온건·개혁파인 로하니가 유력한 여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이 됐다"면서 "서방과 대화로 제재를 풀지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신임 로하니 대통령은 의심스러울 정도로 서방의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9월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에 갔다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불쑥 전화를 걸어 핵 협상을 논의했으며, 현지 언론 편집국장들과 만나 "홀로코스트는 비난받을 만하다"고도 했다. 이란에서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이 꾸민 거짓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그의 발언은 파격이었다.

로하니와 오바마 간 해빙(解氷) 무드가 조성되자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스라엘은 "제재를 완화하려고 꼼수 부리는 것"이라고 했다.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도 최근 "이란이 딱 한 번 핵개발을 중단한 적이 있었는데, 2003년 로하니가 협상팀에 있었을 때"라면서 "최고 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가 협상용으로 로하니를 내세운 것일 뿐"이라고 했다.

최근 주한 이란 대사관에 들렀다가 로하니의 초상화가 걸려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 대사관에 가면 그 나라 대통령의 초상화나 사진이 걸려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란은 달랐다. 이란 외교관은 "전·현직 최고 지도자인 루홀라 호메이니와 하메네이 사진만을 건다"고 했다. 신정(神政)체제인 이란에서 대통령은 결국 최고 지도자의 의중을 이행하는 손발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지난달 24일 이란 핵 협상이 잠정 타결됐다. 이란의 움직임을 볼 때 주목해야 할 사람은 대통령 로하니보다는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다. 그가 북한처럼 딴생각을 하진 않는지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노석조 | 국제부 기자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