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11 10:25

공원묘원에 버려진 시신…단서 없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부산의 한 시립공원묘원에서 비닐 봉투에 담긴 시신이 발견됐다. 공원묘원 관리인이 아침에 묘지 뒤편에 유기된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공원묘원에는 관리인이 근무하고 있었지만 사건이 한 밤중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 했다. 시신이 발견된 주변에서는 시신을 옮긴 것으로 보이는 승합차도 같이 발견되었다. 승합차는 00체육관이라고 상호가 새겨져 있었다. 시신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인근의 00체육관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으로 확인되었다.

시신에 대한 부검이 실시되었다. 부검 결과 사인은 두개골 함몰골절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 유기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다. 무엇인가 둔기로 머리를 맞고 숨진 것이었다. 차량이 같이 있었던 점으로 보아 어디선가 살해되어 그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였다.

수사관들이 바로 체육관을 찾아 차량 소재와 피해자와 관련된 사항을 조사했다. 체육관 관장에게 피해자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피해자는 고향 후배인데 자신이 권유하여 시골 고향에서 올라와 자신의 배려로 숙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도장 청소와 관리를 하면서 합기도 수련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사건에 대해서 묻자 관장은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차량도 후배가 관리해서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체육관 내부를 보니 잘 정돈되어 있었고 아무런 사고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정황상 체육관 내에서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관장에게 피해자가 무엇을 했는지 행적을 물었다. 관장은 자신은 체육관을 정리하고 퇴근하여 후배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피해자를 알고 있는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조사도 이루어졌지만 누구도 그날 그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친구들과 통화를 한 적도 없었다. 그날 저녁 시간대에 피해자가 어느 곳을 갔고 무엇을 했는지 전혀 나오지 않았다.

한편 주변에서 발견된 승합차에 대한 감정을 실시했다. 승합차는 많은 피를 흘린 피해자와는 다르게 너무 깨끗한 상태였다. 구석구석을 살펴도 별다른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시신을 옮겼으면 혈흔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혈흔이 검출되지 않았다. 모든 곳에서 혈흔 검출 시험을 했지만 딱 한 곳 문짝에서 아주 작은 한 방울의 혈흔이 검출되었다. 혈흔의 혈액형은 피해자와 같은 O형이었다. 그것만으로는 승합차로 시신을 실어 그곳에 유기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범인은 왜 시신과 같이 승합차를 버리고 걸어서 공원 묘원을 탈출했을까?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고 있었다.
일러스트/윤현영
일러스트/윤현영

피해자 일기장에 적힌 메모로 체육관장을 의심

피해자 주위에 대한 수사도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체육관 안에 있던 피해자의 유품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수사관은 그의 최근 행적을 밝힐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해 그의 유품을 꼼꼼히 뒤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피해자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최근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피해자의 일기에 “관장이 왜 증명을 떼어 오라하는지 모르겠다”고 적은 메모가 있었다. 이 내용은 분명히 무엇인가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의심하는 증명이라 함은 인감증명이 아닐까? 수사관의 시선이 그곳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일기의 내용 중 한 부분이었지만 사건의 단서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수사의 방향은 내부에 혐의점을 두고 선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깨끗해서 체육관 내부에 대해서는 별 혐의점을 두지 않았지만 체육관 내부에 대한 수사도 병행하기로 했다. 넓은 곳이었지만 체육관 내부 전체에 대한 혈흔 검출 시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혹시 체육관 내에서 살해가 이루어졌다면 옮기는 과정에서 혈흔이 체육관의 바닥 등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체육관 내부를 모두 천으로 가려 어둡게 하고 (루미놀은 형광 반응을 보는 것이므로 컴컴한 곳에서만 실험이 가능하다), 체육관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루미놀 시험을 하였다. 혈흔이 검출되지 않았다. 다시 체육관의 내부에 대해 혈흔검출 실험을 했다. 매트가 깔려 있는 곳을 모두 들춰가면 실험을 했다. 모든 곳에서 혈흔이 검출되지 않았다. 힘도 들고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예상이 빗나가는 순간이었다. 의심은 가더라도 결정적인 물증이 없으면 범행을 입증할 수 없는 노릇이다.

태연한 체육관장…하지만 곳곳에 드러나는 혈흔 형태

마지막으로 현장의 세면장 및 샤워실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세면장도 너무 깨끗했다. 육안으로는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우선 조심스럽게 입구부터 루미놀을 뿌려나갔다. 체육관장은 시종 태연하게 우리가 실험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뭐라도 찾아보라는 식의 표정이었다. 그 때까지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그럴 것도 같았다.

하지만 입구에서부터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았던 곳에서 혈흔 반응이 나타났다. 거짓말처럼.
“이 핏자국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실험 장면을 같이 보고 있던 수사관이 어둠 속에서 관장에게 물었다.
“네 그것은 그 친구가 코피가 흘려서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관장은 태연했다.

다시 한발 나가서 벽면에 루미놀을 분사했다. 순간 혈흔이 흘러내린 자국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벽면에서 형광을 발하며 나타났다. 혈흔의 모습은 혈액이 튄 뒤 흘러내린 형상이었다.
형사가 다시 체육관장에게 물었다.
“상당히 많은 혈흔이 검출되는데 이 혈흔은 무엇입니까?”
“네 그것도 그 친구가 그 전에 코피를 흘려서 그런 겁니다.”
관장은 그때도 태연했다.
다양한 혈흔의 형태
다양한 혈흔의 형태

계속 세면장 및 샤워실에 대한 정밀한 실험을 진행했다. 혈흔반응 검사 결과 많은 곳에서 혈흔이 검출되었고 욕실 천장에서도 혈흔이 나왔다. 바닥의 타일 사이에서도 강한 혈흔반응이 나타났다. 현장 실험이 끝나고 불을 켰다. 실험 결과를 수사관에게 말했다.
“세면장과 샤워실에서 혈흔이 검출되었습니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곳곳에 흩어진 혈흔이 검출되었습니다. 혈흔 형상으로 보아서는 체육관장이 말한 코피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곳이 사건이 일어난 곳이 확실해보였다. 사건 당시 현장에선 격렬한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체육관장의 자백, “보험금 타려고 살해했다”

피해자는 샤워실에서 둔기로 살해된 뒤 유기된 것임이 확실해 졌다. 체육관장은 계속 피해자가 얼마 전 코피를 흘렸는데 그 코피에 의한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하지만 코피로는 그런 혈흔 형태가 나올 수 없다는 점을 계속 추궁하자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범인은 차량을 가지고 오면 탄로 날까봐 시신을 싣고 갔던 체육관 소유의 차량을 그곳에 버리고 걸어서 산길을 내려왔다고 했다. 조사 결과 관장은 체육관을 이전하면서 돈이 모자라게 되자 보험금을 노리고 피해자를 살해하고 유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관장은 고향 후배인 피해자를 생명보험에 들게 한 뒤 인감증명이 필요하다며 인감증명서를 떼어 오게 한 뒤 후배 몰래 자신을 상속인으로 변경해 보험회사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몇 년 전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관장 부인에 대해 추가 수사도 진행했다. 부인 명의로 거액의 보험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관장은 자신의 부인도 보험금을 노리고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장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사건현장을 깨끗이 세척하였으나 현장에는 수많은 혈흔이 남아 있었다. 그 당시에는 혈흔 형태 분석에 대한 학문적 바탕이 전혀 없었던 때였지만 혈흔 형태 분석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혈흔 형태 분석이 하나의 전문적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건을 재구성하고 사건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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