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2.02 05:35
서울 흥인지문에서 낙산 쪽을 보면 언덕바지에 동대문교회 본당 건물이 서 있고 그 옆에 ㄱ자형 낡은 기와집이 보인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예배당 건물이다. 120여년 전 이곳에서 국내 최초의 남녀 합동 예배가 열렸다. 남녀가 유별(有別)해 다른 교회는 선교사도 휘장 뒤에서 설교하던 시절이었다. 동대문교회는 이화학당 설립자 스크랜턴 여사가 1887년 세운 국내 첫 여성 병원 '동대문부인진료소'에서 출발했다.

▶'닥터홀의 조선 회상'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선교사 윌리엄 홀과 로제타 홀 부부는 1892년 이 교회에서 한국 처음으로 서양식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가 이곳 병원에서 낳은 아들 셔우드는 선교사로 자라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어 결핵 퇴치에 앞장섰다. 1910년 교회가 새 건물을 짓자 담임 목사였던 벙커 선교사는 미국에서 국내 첫 서양식 교회 종을 만들어 가져왔다. 이 종은 3·1운동 때 종로에 울려 민족혼을 일깨웠고 8·15 광복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만물상] 동대문교회의 운명
▶한국 보이스카우트의 전신(前身) 소년척후단의 '제1지대(支隊)'가 생긴 곳도 이 교회였다. 그렇듯 '최초' 기록을 여럿 세우며 근·현대사와 함께해 온 동대문교회가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조선시대 한양 성곽을 복원한다며 성곽 옆 동대문교회를 인수한 서울시가 교회 건물들을 허물고 공원을 짓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요일인 어제 동대문교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옆에는 '공원 조성을 위한 서울시 소유 재산'이라는 출입 통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 동대문교회가 이렇게 되기까지는 교회 내 복잡한 사정도 있었던 듯하다. 내부 사정을 떠나, 하나의 문화재를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또 다른 문화재를 허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서울시가 공원에 짓겠다는 잔디광장, 휴게소, 정자는 서울 성곽 복원과 직접 관련도 없는 것들이다.

▶프랑스에서 1878년 지은 스트라스부르 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결론은 기존 역사(驛舍)는 벽돌 한 장 건드리지 않고 보존하면서 건물 전체를 거대한 유리 돔으로 덮어 역 공간을 넓히는 것이었다. 스트라스부르 역은 옛 모습과 현대가 어울린 새로운 문화재로 다시 태어났다. 우리도 문화재 보존과 복원에서 과거와 근·현대를 조화시키는 지혜를 발휘할 수 없을까. 서울 성곽 길에서 만나는 동대문교회의 자취들은 서울 성곽을 빛나게 할망정 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김태익 | 논설위원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