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26 05:30

'마쳤다'대신 '종료했다'라고 쓰는 고교생들, 쉽고 명료해야 최고의 글임을 알아야
딱딱한 한자어투 남용하면 읽는 이에 거부감 주고 소통 방해때론 정확하지도 않아

몇 해전 어느 후배가 어느 국가 기관의 조직 개편에 관한 기사를 쓰다가 제게 물었습니다. “김 선배, ‘○○부’를 없앤다는데 이걸 ‘폐지하기로 했다’고 써야 맞나요 ‘철폐하기로 했다’고 써야 하나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철폐는 무슨…. 지금 말한 그대로 ‘없애기로 했다’고 쓰면 되잖아.” 후배는 뒤통수를 한 방 맞은 듯 “아…그러네요.”라며 씩 웃었습니다.

그 후배는 말로는 ‘없앤다’라고 하면서 신문 기사에서는 한자어를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 ‘없애기로 했다’는 표현이 가장 쉽고도 명료하지 않습니까. 기자들조차도 때로는 정확하고 쉬운 우리말 놔 두고 한자어를 써서 글을 망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제가 이 강좌 첫 회에서 말씀드렸듯, 어렵고 딱딱한 단어와 표현이 ‘유식함’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기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듯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글을 좀더 잘 써 보려면 이런 선입견에서 벗어나 늘 쉽고 명료한 표현을 써야 합니다. 얼른 생각하면, 딱딱한 한자어투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나 잘 쓰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한자도 별로 안 배운 중·고등학생들의 글에 의외로 한자어들이 쓸데없이 많이 발견되더군요. ‘학생기자 아카데미’에서 제가 가르쳤던 고교생의 문장 중에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인터뷰를 종료했다.>
<이 식당은 보유한 메뉴 중 절반 이상이 2만원을 초과하는 곳이다.>

이건 좋은 글이 아닙니다. 어떻게 써야 했을까요. 첫 번째 문장에서 ‘종료했다’는 ‘마쳤다’로 하는 게 좋습니다. 두 번째 문장에서는 ‘보유한’ ‘초과하는’ 같은 한자어의 사용도 적절하지 않으며 문장 구조도 복잡합니다. “이 식당에서 파는 음식 메뉴 중 절반 이상이 2만원을 넘는다.”정도로 다듬으면 훨씬 이해하기 쉬운 문장이 됩니다.

한자어투를 남용한 글은 무엇이 문제일까요. 세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쉽게 말해도 될 걸 어렵게 말했기 대문에 이해와 소통에 불편합니다. 둘째, 한자어를 너무 많이 쓰려다가 때로는 부정확한 글을 쓸 수도 있습니다. 한글 세대 학생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한자어를 쓰려다 보면 종종 일이 꼬입니다. 부정확한 글은 글의 수준을 논하기에 앞서 기본부터 못 갖춘 최악의 글입니다.

셋째, 한자어를 남발하면 읽는 이에게 거부감을 줍니다. 뭔가 유식한 체 하려는 태도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가수가 진솔한 태도로 노래하지 않고 고난도의 기량을 자랑하려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면 듣는 사람이 감동하기는커녕 듣기 싫어지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어느 TV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심사위원은 휘황찬란한 테크닉으로 노래 부른 참가자에게 “지금 당신은 노래를 부른게 아니라 ‘나 노래 잘 해’라고 자랑만 했다”며 불합격시켰습니다. 글 쓰기도 사람 마음에 다가가는 일이므로 노래의 자세에 관한 이런 지적은 참고할 만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학교를 ‘배움터’라고 쓰자는 식으로 생소한 말을 만들어서라도 우리 고유어만 쓰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와 표현법과 문장구조를 택해서 쓰자는 것입니다.
어느 하수 처리 전문 업체가 인터넷에 올린 설명문 중 일부.  '빗물'을 '우수'로 쓰는등 한자어를 필요 이상으로 남발하여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어느 하수 처리 전문 업체가 인터넷에 올린 설명문 중 일부. '빗물'을 '우수'로 쓰는등 한자어를 필요 이상으로 남발하여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문자 생활을 돌아보면 부자연스런 한자어 표현들을 쓰는 일이 꽤 많습니다.공공 장소에 게시된 안내문 같은 글을 읽다 보면 일상 생활에서 쓰지도 않는 어려운 한자어를 쓰는 경우도 봅니다. 서울 곳곳에 홍수가 났을 때 빗물을 퍼내도록 설치된 펌프장의 이름은 여러 해 전에는 ‘우수배제펌프장’이었습니다. ‘빗물(雨水·우수)을 밖으로 빼내는 펌프장’이란 뜻인데 한자도 아니고 그냥 한글로 ‘우수’라고 써 놓은 표지판을 보고 ‘빗물’인줄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심지어 ‘우수(優秀)’나 ‘우수(憂愁)’같은 동음이의어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은 ‘우수배제펌프장’이란 이상한 이름이 사라지고 대신 ‘빗물펌프장’으로 바뀌었습니다만, 딱딱한 표현들은 아직도 우리 주변 곳곳에서 보입니다. 가령, 대부분의 우리나라 커피 자판기에는 ‘지폐투입구’라는 글자가 씌어 있습니다만 미국,일본의 자판기들이 ‘지폐 넣는 곳’정도의 쉬운 표현을 쓰는 것에 견주면 딱딱한 표현입니다.

하수도 처리에 관한 어느 전문가가 쓴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종말처리장은 오수를 정화하여 하천으로 방류하는 시설물을 말한다. 유수지 배수펌프장은 직접 하천으로 방류되지 못하는 저지대의 우수를 배제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시설물이다.>

정말 어렵습니다. “종말처리장은 더러운 물을 정화하여 강으로 내보내는 시설물이다. 유수지 배수펌프장은 직접 강으로 흘려 보내지 못하는 낮은 지대의 빗물을 퍼내기 위하여 설치하는 시설물이다.“라고 바꾸면 훨씬 쉽지 않습니까.

글을 쓸 때마다 언제나 ‘이 표현보다 더 쉽고 명료한 표현은 없을까’를 고민해 봅시다. 그 어려운 한문으로 글을 썼던 조선의 선비들도 지나치게 기교를 부린 문장을 경계하고 쉽고 명료하게 써야 한다는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조선지식인의 글쓰기 노트’(한정주 저)라는 책에 실린 옛 조선 문장가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음미해 볼 만합니다.

”언어는 마음의 소리이다. 기교를 부린 문장일수록 경박스럽다. 글을 쓸 때 스스로를 속여서는 안 된다.…글이란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이니 깨달은 뒤에 글을 쓰라. 견문과 지식이 얕고 좁은 사람은 좋은 글을 쓰기 어렵다. 마음과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간략하고 쉽게 글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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