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25 05:44
1970년 어느 연대 군의관의 안타까운 죽음

1970년 가을 일선 사단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10월 중순쯤인가, 휴가 갔다 돌아와 보니 연대 군의관이 유행성 출혈열 말기로 후송되었다고 했다. 출혈열 센터에 그를 찾아 문병을 갔더니 이미 혼수 상태였고 1주일 후 사망하였다. 군의관이 유행성 출혈열이란 전염병으로 사망한 것이다.

연대에 가서 위생병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군의관이었기에 죽어간 것이다. 의학 수준이 낮을 때 병에 걸린 게 죄라면 죄라고 할까?
위생병의 증언.
―‘군의관님이 미열이 나고 오슬오슬 춥다고 하시며 일교차가 심해서 감기 몸살이 난 것 같다고 아스피린을 잡숫고 쉬겠다고 하심.
―하루가 지나고 열은 나는데 군의관님은 계속 휴식 중.
―워낙 말이 없고 잘 참는 분이라 링거만 꽂아 놓고 있었음.
―3일째, 너무 말이 없고 기운이 쪽 빠져 보여서 흔들어 깨웠으나 좀처럼 안 일어나심.
―몸에서 암모니아 냄새 또는 지린내가 나서 사단 의무중대로 후송, 다시 출혈열 센터로 후송
―이미 저혈압이 심하고 요독증 말기 끝에 사망하심.’

1970년대 초반에는 유행성 출혈열 진단 키트가 없었다. 진단 방법이라고는 소변에 단백질이 나오는가를 보기 위해 시험관에 소변을 넣고 알코올램프로 가열하여 단백이 하얗게 응고 되거나 현미경으로 혈뇨를 확인하는 검사실적인 방법이 있었고, 임상적 진단 5단계로 1. 열이 나고, 2. 혈압이 내려가고, 3. 소변이 적게 나오고(하루 500cc이하), 4. 소변이 터지며(다뇨), 5. 회복기로 진단하였다. 아주 그럴 듯 해도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답답하고도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감기, 몸살과 초기에는 별 다를 게 없었다.

그 당시에는 전염원이 들쥐에 기생하는 진드기라고 해서 군인들이 훈련이나 사역을 하고 오면 내무반 입구에서 신발과 바지 끝을 살충제로 소독해야 비로소 들어 갈 수 있었다. 6.25 전시에는 치사율이 15%나 높아서 생물 무기로 생각되어 미국의 새빈 같은 바이러스 학자들이 조사를 왔을 정도였다. 그런 무서운 병이었는데 근래의 치사율은 거의 0%이다.
군대 의무실/구글 이미지
군대 의무실/구글 이미지
1990년 가을 성묘

할아버지 성묘를 하며 묘 옆의 잔디에 편히 앉아 있는데, 매부가 기겁을 하며 큰 소리로 빨리 일어 나라고 한다.
“아니, 지금 유행성 출혈열이 돌 텐데. 어쩌려고 성묘 와서 잔디밭에 앉느냐고!”
할 수 없이 일어나서 몸을 툭툭 털었던 기억이 난다.

감염내과를 전문으로 하는 의과대학 교수마저 무안하게 만든 유행성 출혈열에 대한 그 당시 일반의 공포심을 잘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내가 누구이고 때가 어느 때였던가? 나는 감염병이 전공이여서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는 물론 유행성 출혈열, 에이즈, 렙토스피라, 쯔쯔가무시, 사스(SARS), 조류 독감, 신종 플루 등 새로운 신종 전염병이 생길 때는 제일 먼저 정부와 함께 현장에서 뛰어 온 사람인데.

유행성 출혈열은 이호왕 교수님이 바이러스의 발견부터 전염 경로의 파악, 훌륭한 백신까지 개발한 병으로서, 한 개인이 어떤 병의 발견에서 예방까지 한 라운드로 깨끗이 해결한 세계 유일의 병이다. 미국에서 이민 오면 노벨상까지 추진하겠다는 걸 거절하신 대단한 분이셨다. 이 교수님의 연구 이후, 병 이름도 바뀌었다. 유행성 출혈열(열나고 출혈하는 유행병이란 막연한 내용)에서 신증후출혈열(주로 신장에 출혈 성 병변이 있는 유행성 전염병이란 뜻)로 보다 구체적인 병증을 나타내게 되었다. 병원체는 한탄바이러스인데 한탄강가 들쥐의 폐에서 발견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 역시 이 연구에 백신 효과와 임상 경과 쪽의 일을 아주 쬐금 거들어 들인 적이 있다.

가을 추수철이 되면 식량이 풍부해져서 들쥐의 숫자가 늘어나고 들쥐의 소변으로 배설된 한탄바이러스가 들쥐의 서식지 주변에서 묻어 나며 주로 풀 먼지와 함께 공기를 통해서 사람에게 감염된다. 처음 증세는 감기몸살과 비슷하게 열이 나는데 기침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극심한 피로와 함께 혈압이 떨어지고 소변이 거의 안 나오니 눈이나 피부에 출혈반이 생긴다. 최악의 경우에는 급성 신부전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근래의 치사율은 0~0.5%로 거의 사망하지 않으며 자기도 모르게 바이러스가 스치고 지나간 적이 대부분이라는 항체보고서도 있다. 보통사람들은 골프, 등산, 성묘, 농사일 등 야외 활동에 크게 제한 받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유행성출혈열을 정복한 이호왕 박사
유행성출혈열을 정복한 이호왕 박사
쯔쯔가무시병

198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대전에서 개업한 후배한테 전화가 왔다. 이 가을에 웬 피부 발진 환자가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뭔지 좀 원인을 밝혀 달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농촌의 가을에는 피부 발진이 나면서 열 나는 환자가 넘쳐난다는 것을 알았다. 경남 진해에 개업하시던 분에 의해 실마리가 풀려서, 우리나라에 쯔쯔가무시라는 리케치아(일반 세균보다 크기가 작고 바이러스처럼 살아있는 세포 밖에서는 증식하지 못하는 작은 미생물) 질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은 나 같이 감염 병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게으르고 공부를 안 해서 생긴 일이었다. 1945년 미군이 광복된 한국에 주둔할 때 두 명이 이 병에 걸려서 미국의 전염병 지도에는 이미 남한을 검은 색으로 칠해 놓은 것이 있었고 나도 본 적이 있었다.
‘에이, 우리나라에는 발진티브스도 없어졌으니 리케치아 병은 이제는 없는 병이야’
라고 지워 버린 게 큰 실수였다. 자세히 알아 보지도 않고,…

이 병은 리케치아가 병원체인 급성 열성 전염병이다. 산야에서 활동하다 감염된 진드기 유충에 물려서 리케치아가 몸으로 침입한다.
진드기에 물린 자리에 가려워서 긁고 또 긁다 보면 굵은 딱지가 앉은 것을 ‘가피’라고 하여 보통 사람들도 눈 여겨 볼 만한 진단적 가치가 있다. 리케치아가 혈관 주위에 염증을 일으키므로 간, 신장, 폐, 뇌수막 등 거의 전신에 침범하나 거의 발진과 열로 마무리 되고 감염 환자 중 극히 일부만 중한 증세가 나온다.

시기적으로 가을 추수기에 산야에서 활동량이 많은 사람에게 잘 걸린다. 가을철에 열이 나고 피부 발진이 있으면, 일단 쯔쯔가무시병을 의심할 정도로 많이 걸린다. 그때는 병원에 가야된다. 이 병은 잘 낫는 병이다. 주의할 점은 가을철 갈대밭이 아름다울 때 수풀 사이를 쏘다니지 말고 집에 와서는 반드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 입어야 한다.
진드기의 유충이 피부에 붙어 피를 빨아먹은 부위에 가피(딱지)가 동반된 궤양
진드기의 유충이 피부에 붙어 피를 빨아먹은 부위에 가피(딱지)가 동반된 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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