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19 05:55
김대식 KAIST 교수 사진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천문학자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1855~1916)은 조선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1883년 일본 방문 중 로웰은 당시 고종황제가 미국으로 보내려던 수호통상사절단을 안내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덕분에 '노웰(魯越)'이라는 한국 이름까지 얻게 된 그는 조선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서방에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한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인들에게 로웰은 다른 업적으로 더 유명하다. 바로 '화성 운하' 때문이다. 이탈리아 천문학자 스키아파렐리(Giovanni Schiaparelli)가 1877년 처음으로 화성 표면에 '운하'가 존재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본에서 귀국 후 애리조나주에 개인 천문대를 설립한 로웰 역시 화성엔 수많은 운하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화성 운하들은 자연적 현상이 아닌 고대 화성 문명의 증거라는 것이다.

과거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했는지는 여전히 과학적 논쟁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 화성에 고대 문명이 만든 운하가 보존되었을 확률은 거의 없다. 물론 음모론자들은 여전히 화성 표면엔 운하뿐 아니라 '화성인 얼굴'까지 존재한다고 주장하지만, 로웰과 19세기 학자들이 믿었던 운하는 그림자에 비친 지질학적 현상들이 만들어낸 우연한 착시에 불과하다.

화성인의 얼굴? 아니면 그림자가 만들어낸 우연한 패턴 사진
화성인의 얼굴? 아니면 그림자가 만들어낸 우연한 패턴.

그렇다면 재미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왜 인간은 항상 무의미한 패턴에서 의미 있는 현상을 보려 하는 것일까? 답은 인간의 뇌에 있다. 망막에 들어오는 시각정보를 분석해 보면 형태도 색깔도 입체감도 없다. 단지 망막에 꽂히는 광자들의 확률 분포일 뿐이다. 입체감·색깔·형태 모두 시각 피질과 고차원 뇌 영역들이 만들어낸 계산적 결과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지금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 상태로 뇌에 '입력'된 것이 아니라, 뇌를 통해 '출력'된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시각적으로 정확한 정보가 입력될 경우 출력과 입력은 대부분 동일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망막에 꽂히는 정보가 애매모호하다면? 화성 표면의 패턴들같이 불확실하고 다양한 해석들이 가능하다면 뇌는 어떤 기준을 통해 우리들 눈에 보이는 세상을 만들어낼까? 바로 기억과 편견이다. 시각적 자극만을 통해 확실한 영상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뇌는 추론을 통해 지각될 세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세상은 단순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싶은 쪽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무의미한 별들 간의 무늬를 전쟁에서 승리하고 세상을 다스리는 신화의 영웅들과 연결했다. 하지만 밤하늘 둥근 달을 보며 달 표면에 그려진 계곡과 그림자들을 우리 조상들은 방아 찧는 토끼로 상상했다. 영웅도 신도 아닌 단순히 평화롭고 풍요로운 한 장면을 상상했던 우리의 조상들, 서글퍼지면서도 정(情)을 느끼는 건 우연이 아닐 듯하다.

김대식 | KAIST 교수·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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