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09 07:57

[노인 91%, 인공호흡기 원치 않지만… 암환자(서울대병원서 암으로 숨진 환자) 되면 절반이 연명치료]

의사 82%·중년 96% "난 편히 가고 싶다"면서도
자신의 환자·부모의 경우엔 상당수가 "연명 치료"

"끝없이 일해 가난 이긴 한국인… 죽음도 끝까지 극복하려 해
그러다 환자가 죽으면 책임질 누군가를 찾기 때문에 연명치료 중단 말 못하는 것"

환자 위해 연명치료하기보다 가족의 위안 위해 하는 경향

"사나흘이면 숨이 멎을 말기 암 환자가 심폐소생술 받다가 갈비뼈가 부러지고 장기가 상했습니다. 기관 삽관하느라 앞니까지 부러졌고요. 79세 위암 환자가 '무조건 최신 항암요법 다 해달라'는 딸 앞에서 아무 말 못하고 앉아 있다가 의사가 '너무 힘들어서 저라면 안 하겠다'고 하니까 '그렇지요, 선생님?' 하고 좋아한 적도 있습니다. 이게 다 수명은 길어지는데 연명 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어서 벌어지는 가슴 아픈 장면입니다." (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소화기 내과)

많은 한국인에게 인생 마지막 10년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오래 살고 오래 앓긴 다른 선진국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그들과 달리 마지막 10년을 어떻게 보낼지 툭 터놓고 정리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취재팀이 서울대 의대 교수 166명, 노인 500명, 40~50대 500명 등 총 1166명에게 "당신이 치명적인 병으로 반년 안에 사망할 게 확실하다면 어떻게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서울대 의대 윤영호 교수팀과 미디어리서치가 공동 진행한 이 조사에서 서울대 교수, 노인, 중·장년 모두 압도적 다수가 "무의미한 연명 치료 없이 편안하게 가고 싶다"고 했다(서울대 교수 82.3%, 노인 91.4%, 중·장년 96.1%).

그러면서도 "부모나 환자가 같은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면 상당수가 입장이 달라졌다. 자기는 "편안히 가고 싶다"는 사람들이 여덟 명 중 한 명꼴로 "부모와 환자는 연명 치료를 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서울 보라매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의식을 잃은 채 약물을 투여받고 있는 모습. 연명치료에 대한 이중성. 세대별 마지막 10년 의식조사.
의사와 보호자들은 본인이 위독할 경우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환자나 자신의 부모에 대해선 반대로 답한 경우가 많았다. 사진은 서울 보라매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자가 의식을 잃은 채 약물을 투여받고 있는 모습. /오종찬 기자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사람을 살리지도 못하면서 진만 빠지게 하는 연명 치료는 무의미하다'는 공감대였다. 조사에 응한 서울대 의대 교수 열 명 중 여덟 명이 "내가 말기 환자가 되면 수술·항암치료·인공호흡기 같은 적극적인 치료를 피하고 호스피스(완화 의료)를 택하고 싶다"고 했다(82.3%).

노인들은 열 명 중 아홉 명이 "위독해지면 인공호흡기 없이 편히 가고 싶다"고 했다(91.4%).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사람(4.5%),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사람(3.1%)은 열 명에 한 명이 채 안 됐다. 중·장년은 절대다수가 "편히 가고 싶다"고 했다(96.1%).

그런데도 왜 집집마다 마지막 10년 중 마지막 몇달 간의 간병 부담과 의료비 부담을 둘러싸고 전쟁 같은 갈등이 불거지는 것일까.

연명치료 딜레마가 벌어지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특유의 가족 문화를 꼽았다.

"한국인은 '끝없이 일해 가난을 극복했듯이 죽음도 같은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해요. 노력해도 환자가 죽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대신 죽음에 책임질 누군가를 찾아요. '의사가 잘못해서…' '형님이 간병을 게을리해서….'"(허대석 서울대 의대 교수·종양내과)

"그래서 때론 연명치료가 환자를 위한 최선책이라기보다 남은 사람들을 위한 최선책이 될 때가 많아요.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위안이지요."(하종원 교수·이식혈관외과)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취재팀이 의사들과 중·장년에게 "본인 말고 환자와 부모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상당수가 입장을 바꿨다. "나 자신은 연명 치료를 받기 싫지만 내 부모나 내 환자는 연명 치료를 받게 하겠다"는 식이었다.

의사들은 위독한 사람이 본인일 때는 열 명 중 여덟 명이 "적극적인 치료보다 호스피스가 낫다"고 했지만(82.3%) 대상자가 환자일 때는 열 명 중 일곱 명만 같은 대답을 했다(70.5%). 중·장년 역시 위독한 사람이 본인일 때는 "편히 가는 게 낫다"고 당당하게 말했지만(96.1%) 부모가 같은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하겠다는 사람이 줄어들었다(79.8%). 자기 일일 때는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는 사람이 극소수였지만(1.6%) 부모님 일이 되면 "하루라도 더 사시게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14.6%). 요컨대 중·장년이건 의사건 여덟 명 중 한 명꼴로 '나라면 안 할 선택'을 부모와 환자에겐 권하고 있었다.

한국인의 마지막 10년.
꼭 급성 질병만 이런 딜레마를 겪는 게 아니다. 가령 치매 초기 노인의 여명은 10~12년이다. 정신이 또렷할 때 마지막 10년을 보낼 '최선의 방법'을 마련하고, 믿을 수 있는 후견인·간병인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우선 그럴 여력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고, 여력이 있는 사람도 경황이 없어 때를 놓친다. 아플 때 어떻게 대처할지 서로 얘기를 못해 온 가족이 멍든다.

경기도 분당의 대형 아파트(198㎡·60평)에 혼자 살던 70대 치매 할머니가 산책 갔다 돌아와서 깜짝 놀랐다. 아파트 앞에 이삿짐 차가 두 대였다. 큰 차는 다른 가족 이삿짐을 들여오는 차, 작은 차는 할머니 짐을 들어내는 차였다. 이사 회사 직원이 말했다. "아드님이 아파트를 팔았어요. 할머니는 더 아늑한 집으로 모셔 가래요." 직원이 할머니를 수원 소형 아파트(50㎡·15평)에 내려줬다. 외아들은 바쁘다며 오지 않았다.

반년 뒤 몰라보게 추레해진 할머니가 분당 서울대병원에 왔다. 할머니가 낯선 동네에서 불안하게 서성거리는 걸 보고 이웃 아주머니가 "전에 다니던 병원이 어디냐?"고 물어 모시고 온 것이다. 이후에도 매달 할머니를 모셔오는 건 사람 좋은 그 아주머니지 할머니 인감으로 전 재산을 틀어쥔 외아들이 아니었다. 온 김에 여러 달치 처방을 받아가면 좋을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아들은 한 달 먹을 약값과 끼니 이을 돈만 간당간당 부쳤다. 할머니는 몇번 오다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제가 본 최악의 마지막 10년이고, 가장 가슴 아픈 환자였어요. 청상과부로 억척스럽게 재산을 모은 분이었어요."(김기웅 교수·치매 전문가)

정현채 교수(소화기내과)는 "마지막 10년과 마지막 몇 달을 다 같이 잘 보내려면 노인·환자·의사가 의사소통이 잘 돼야 하는데 우린 그것부터 잘 안 된다"고 했다.

68세 환자가 '식후에 자꾸 더부룩하다'고 찾아왔다. 이미 암이 온몸에 퍼져 있었다. 가족이 "아버지한텐 비밀"이라고 했다. 환자는 수술 잘됐다는 말만 믿고 집에 돌아갔다가 갑자기 중환자실에 실려와 인공호흡기를 꽂은 채 의식 없이 삶을 잇다 숨졌다.

"옳지 않아도 따라가게 되는 게 관행이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가 마지막 10년과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맞을지 다양한 측면에서 깊이 숙고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함봉진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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