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11.07 05:08

'유식하고 점잖게' 써서 과시하려는 잘못된 선입견이 글을 망쳐
머릿 속 생각을 차분하게 정리, 쉽고 진솔하게 '말하듯' 써라

여러분과 글 쓰기를 함께 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20여년 간 기자로 활동하면서 받아 본 많은 부탁 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이 글 좀 다듬어 주실래요”하는 부탁입니다. 글 쓰는 게 직업이고, 전공까지 국문학이다 보니 가족·친척들은 물론이고 많은 지인들이 글 좀 잘 써야 하는 일이 있으면 제 전화를 두드립니다.

학교 작문 과제, 입시용 자기소개서는 물론이고 집안 어르신의 특허 출원 제안서 문장도 다듬어 봤습니다. 아들 녀석 초등학교 시절, 어느 교사의 특정 종교 편향적인 수업 태도에 문제를 느낀 학부형들이 학교측에 집단 항의를 할 때도 ‘항의문’ 작성은 제 몫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글 다듬기 부탁을 해 오는 사람들이 하는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글재주가 없어서 말야…” “아들놈이 머리는 좋은데 글재주가 없어요…”라는 식의 말입니다. 글 쓰기에 관한 중대한 오해가 스며있는 말입니다. 글 쓰기는 ‘재주’가 아닙니다. 문인으로 세상에 이름을 빛내려면 선천적 능력도 있어야겠지만, 일반적인 글 쓰기란 특별한 소질을 타고난 사람만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꽤 많은 사람들이 글 쓰기가 요리나 공예 같은 재주인 것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글이란 손끝으로 쓰는게 아니라 머리로 쓰는 겁니다. 생각을 차근차근 잘 정리하는 태도를 갖추면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입시 전형 과정에서 온 힘을 다해 쓰는 ‘자기소개서’를 생각해 봅시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사실들을 추려내고 정리하느냐에 글의 성패가 달린 것입니다. 미사여구로 화려하게 수식하는 등의 기교는 좋은 글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글을 망치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말은 잘 하는데 글을 못 쓴다”는 것도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그 잘 하는 말을 문자로 자연스럽게 옮기면 좋은 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글은 무언가 말과는 달리 좀 ‘유식하고 점잖게’써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잘못된 선입견이 글을 어떻게 망쳤는지를 보여주는 글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실제로 여러 해 전 어느 고등학교 교지에 실렸던 학생 수필의 일부입니다.

사철의 구분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틀에 박힌 思考(사고)로써 오늘을 알고 내일을 예시할수 있다는 거룩한 生活方式은 매년 찾아오는 春夏秋冬(춘하추동)의 뚜렷한 시간적 공간을 규정짓지 못하고 생활 속에 자신을 스스로 잊게 될 때마다 불가항력적인 무언가 어색한 불만을 갖곤 한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변화하는 계절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표현한 것 같기는 한데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교지 편집진이 학생 수필 중에서 그래도 괜찮게 썼다고 선정한 글인데 놀랍습니다. 이 글은 ‘우리가 왜 글을 쓰는가’를 새삼 생각해 보게 합니다. 글은 남에게 무언가 생각을 전하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읽는 이에게 전달되지 않는 글은 존재 이유를 무너뜨리는 글입니다. 여러 단어들도 뜻에 맞게 사용되지 못하고 있어 난삽할 뿐입니다. 새로 알게 된 단어들을 글에 끼워넣어 남에게 과시라도 하고 싶은 청소년의 치기마저 엿보입니다.
또 한편의 글을 봅시다.작년에 제가 맡은 ‘학생기자 아카데미’를 수강한 한 고교생의 글입니다.

학생 두발 자유화는 경기도에서는 작년부터 시행하고 있던 것으로, 시행중 큰 사건사고가 없었던 경기도에서의 선(先)시행이 이번 서울시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먼저 읽어본 고등학교 교지의 글 보다는 낫습니다만 이 글 역시 매우 이해하기 불편합니다. ‘선(先)시행’같은 이상한 한자어를 써서 글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걸 한 번 고쳐보겠습니다.

학생 두발 자유화는 경기도에서는 작년부터 시행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큰 사고가 없었다. 이에 영향받아 서울시도 같은 결정을 하게 됐다.

어떻습니까. 훨씬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까. 이런 글이 더 좋은 글입니다. 난해한 글을 쓴 두 고등학생들은 모두 공부도 잘 하고 머리가 좋은 학생들입니다. 그들이 능력이 모자라서 글을 못 쓴 게 아닙니다. 글이란 뭔가 점잖고 ‘유식하게’ 써야 한다는 잘못된 선입견을 가졌기 때문에, 딱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학생기자 아카데미를 6기에 걸쳐 진행하면서 의외로 많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이런 선입견을 가진 걸 보고 놀랐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이 작문 과제든 리포트든 좋은 평가를 받는 글을 쓰고 싶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글에 대한 오해를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머리 속에서 잘 정리한 생각을 군더더기 없이 진솔하게 쓰는 태도를 기르는 것입니다. 어떻게 쓰면 좋은 글인지를 보여 주는 한 편의 예문을 또 봅시다.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집 ‘자전거여행’의 한 대목입니다.

낭가 파르바트 봉우리가 눈보라에 휩싸이는 밤에, 비행 진로를 상실한 새들은 화살이 박히듯이 만년설 속으로 박혀서 죽는다. 눈 먼 화살이 되어 눈 속에 꽂혀서 죽은 새들의 시체는 맹렬한 비행의 몸짓으로 얼어붙어 있다.…그것들의 시체 위에서 날개 달린 몸으로 태어난 그것들의 꿈은 유선형으로 얼어붙어 있고, 그 유선형의 주검은 죽어서도 기어코 날아가려는 목숨의 꿈을 단념하지 않은 채, 더 날 수 없는 날개를 흰 눈에 묻는다.

인간을 압도하는 대자연의 비밀스럽고 신비한 풍경 하나를 간결한 문체로 또박또박 적어내 읽는 맛이 각별합니다. 다른 글에서 좀처럼 못 만났던 ‘알맹이’ 하나를 분명히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글이 좋은 글입니다. 앞으로 함께 할 공부는 이처럼 읽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글을 쓰기 위한 공부입니다.

세상 살이에서 글 쓰기의 중요성은 점덤 더 커지고 있습니다. 학생들 앞에 닥치는 논술, 자기소개서의 글 쓰기는 물론이고 사회에 나와서도 ‘글 잘 쓰기’라는 과제가 많은 사람들 앞에 놓입니다. 문필가나 기자가 아니더라도 글 쓰기 능력을 길러야 하는 직업은 무척 많습니다.정당 대변인도 자기만의 표현을 고민해야 하며, 맛집을 소개하는 블로거도 좋은 식당을 발굴하는 것 못지않게 글을 감칠맛 나게 써야 성공합니다. 그런 능력을 기르는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 이 강의를 마련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화· 목요일에 강의글을 올립니다. 화요일엔 글 잘 쓰기 위해 알아야 할 것들을 한 회에 한 가지씩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목요일엔 학생들이 쓴 실제의 글을 예로 들어 문제점을 진단하고 고칠 곳을 찾아내 첨삭 지도합니다. 엄청난 비결을 새로 배우기보다, 좋지 않은 습관만 버려도 여러분의 글쓰기가 두 배는 더 좋아집니다. 컴퓨터 키보드 앞에서 무엇부터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한 모든 분들에게 글 쓰기의 급소를 하나씩 하나씩 명쾌하게 짚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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