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목사는 '나를 따르라' 대신 '함께 예수를 따르자'고 말해야"

입력 : 2013.11.03 23:30

[저스틴 웰비 英 캔터베리 대주교와미산 중앙승가대 총장대행 대담]

- 웰비 대주교
무슬림과 그리스도교 유혈분쟁 지역, 양측 지도자 중재 2년만에 갈등 줄어
화해는 순간의 사건 아닌 긴 과정… 자기 종교에 충실하되 서로 이해해야

- 미산 스님
가족·개인·국가간 단절이 낳은 갈등, 공동체부터 복원해야 막을 수 있어
서양서 동양 종교 관심 높아진 지금 共同善 위해 종교간 협력해야 할 때

저스틴 웰비(Welby·57)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가 지난 30일 한국에 왔다.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상징적 수장(首長)인 캔터베리 대주교가 방한한 것은 지난 1990년 대한성공회 설립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로버트 런시 대주교 이후 23년 만이다. 기업인 출신의 최고 종교 지도자라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답게 지난 3월 취임 이후 진지하고도 활발한 언행으로 성공회 안팎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웰비 대주교를 중앙승가대 총장대행 미산(彌山·56) 스님이 만났다.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이 주제였다.

미산=대주교님은 대학 졸업 후 11년간 석유 회사와 유전탐사 회사에서 일하고 임원까지 된 뒤에 성직자의 길로 들어섰다. 세속적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다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 이색적으로 보인다.

웰비=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성당에 가는 '잠수함 그리스도교도' 집안에서 자라났다. 고교 시절 매일 예배가 있었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대학에 가기 전 잠시 케냐에 머물 때 예수를 살아 있는 실재로 경험하는 그리스도교인을 만나며 신앙의 세계를 알게 됐다. 1983년 딸 아이를 교통사고로 잃은 것은 큰 시험이었다. 그 2년 뒤 하느님이 나를 부르신다고 느꼈다. 회사 생활도 즐겁고 보수도 많았지만 나중에 하느님을 만났을 때 '왜 내가 원하는 것을 듣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왼쪽)와 미산 스님이 2일 서울 정동 성공회 주교관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웰비 대주교는 “현대사회가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고 인터넷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교회는 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고, 미산 스님은 “급속도로 확산되는 스마트 기기보다 더 스마트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지혜를 종교가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왼쪽)와 미산 스님이 2일 서울 정동 성공회 주교관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다. 웰비 대주교는 “현대사회가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고 인터넷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교회는 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고, 미산 스님은 “급속도로 확산되는 스마트 기기보다 더 스마트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지혜를 종교가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형주 기자

미산=대주교님은 성공회 사제가 된 이후의 경력도 특이하다. 10년 동안 일선 성공회 성당에서 사목 활동을 한 뒤 해외 분쟁 지역의 갈등 중재를 위해서 힘썼다.

웰비=평범한 성공회 사제로 일하고 있는데 주교께서 부르더니 아프리카 내전 지역의 갈등 중재를 맡기면서 "한 달에 열흘은 아프리카로 가야 하는데 특별한 지원은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죄성(罪性) 때문에 분쟁 중재는 어려운 일이고 분쟁이 지속될수록 사람은 점점 더 잔인해진다. 중재에서 성공한 것보다 실패한 것이 훨씬 많다. 무슬림과 그리스도교인 사이의 유혈 분쟁으로 5000명이 죽은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양쪽 지도자들을 꾸준히 만나게 했다. 2년 뒤 분쟁이 잦아들었다. 화해는 한순간의 사건(event)이 아니라 장기적인 과정(process)이다.

미산=오늘의 세계에서 성공회와 캔터베리 대주교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웰비=성공회는 개신교와 가톨릭의 양면을 모두 갖고 있어 양자를 연결하는 다리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교세가 크지 않은 곳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성공회 주교들과의 관계에서 '동등한 가운데 첫째(first among equals)'이다. 권위와 명령이 아니라 설득과 지원을 통해 리더십을 발휘한다. 성공회가 기도와 화해의 공동체가 되도록 쇄신하고 사랑의 실천으로 전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이끄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미산=현대사회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오랫동안 개인과 사회를 지탱해왔던 가치와 제도의 붕괴이다. 종교 분야도 가치 체계와 종교적 믿음, 제도화된 종교의 쇠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도화된 종교를 떠나는 대신 영성(靈性)에는 더욱 관심을 갖는다. 이들에게 종교적 가치와 믿음을 갖게 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웰비=우선 종교인들이 겸손하고 투명하며 잘못된 것은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교회가 교만하면 영성에 관심이 있는 사람까지 몰아낸다. 그리스도교 성직자는 '나를 따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예수님을 따르자'고 말해야 한다. 또 교회는 사람들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성공회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쇼핑센터·카페 등을 찾아가는 '새로운 표현(Fresh Expression) 운동'을 펼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저스틴 웰비 대주교와 미산 스님 사진

미산=전통 사회에서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었다. 불교는 그런 관계성을 '연기(緣起)'라고 표현한다. 모든 존재는 우주적 관계성으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자애(慈愛)와 연민으로 보살핀다는 것이 불교 사상의 핵심이다. 하지만 현대인에게는 파편화된 삶이 일상화되어 가족이 붕괴하고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국가와 국가의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공동체의 복원이 시급하다.

웰비=실존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은 자율적이고 고립적인 개인을 상정하고 대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령(聖靈)에 의해 만들어진 교회는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그리스도의 몸'이다. 몸은 한 부분이 아프거나 기쁘면 전체가 같이 느낀다. 교회는 현대사회에서 공동체로 산다는 것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수도원이나 초기 교회 같은 기도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산=최근 한국에는 힐링(healing) 열풍이 불고 있다. 실업과 실직에 따른 고립과 좌절,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피로감과 스트레스로 각종 정신 질환이 급증하고 있고, 이에 따라 힐링 산업이 활성화되고 힐링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

웰비=진정한 힐링은 몸과 마음, 영성이 함께 치유되는 총체적인 것이다. 좋은 의술이나 약물뿐 아니라 사랑이 필요하다. 성공회는 물질적 부의 축복을 말하기보다 사랑을 통한 정신적이고 영적인 힐링을 얻게 하는 데 사목의 비중을 두고 있다. 또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사랑 안에서 죽게 하는 호스피스 활동에 적극적이다.

미산=서양에서는 불교를 비롯한 동양 종교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성공회는 그리스도교 다른 교파들과의 교류에 적극적인데 다른 종교들과의 대화도 중요해지고 있다.

웰비=불교 지도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인 내 친구는 이슬람·유대교인과 함께 그들의 경전을 읽고 있다. 나는 여러 종교가 서로 관계를 맺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각자가 자기 종교에 충실할 때 더 좋은 대화 상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산=여러 종교가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함께 일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웰비=3년 전 런던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 여러 종교가 함께 활동하는 지역만 조용했다. 종교 간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

영국의 사립 명문 이튼 학교를 거쳐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한 뒤 런던과 파리의 석유회사 등에서 재무 담당자로 근무했다. 1993년 37세의 늦은 나이에 성공회 신부가 돼 교구 사제로 활동했고, 2011년 6월 더럼 교구의 주교로 서임됐다. 재무·화해 중재 전문가로 여러 권의 책을 냈고, 2012년 11월 제105대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됐다.

☞미산 스님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 출가하여 동국대를 졸업하고 스리랑카와 인도에서 공부한 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남방불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백양사 참사람수행원 원장과 조계종 사회부장을 거쳐 현재 조계종의 승려 교육기관인 중앙승가대 교수로 재직하며 총장 대행을 맡고 있다. 서울 백운암 상도선원 주지이기도 하다.

정리=이선민 |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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