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4.21 23:09

작년 2월 헤이든 미 CIA 국장은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CIA가 테러 용의자를 신문(訊問)할 때 물고문을 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CIA가 고문 장면이 담긴 녹화테이프를 없애버렸다는 보도가 나온 지 두달 만이었다. 그는 9·11 테러 이후 추가 테러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해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던 용의자 3명에게 워터보딩(waterboarding) 기법을 썼다고 했다. 사람을 널빤지에 묶고 얼굴에 젖은 수건을 씌운 다음 물을 붓는 고문이다.

▶법원 결정에 따라 미 법무부가 지난 16일 공개한 CIA 고문기법 메모엔 워터보딩이 '큰 공포와 고통을 주는 신문 방법'이라고 적혀 있다. CIA 관계자들은 물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곧바로 토하거나, 질식사의 공포에 질려 숨을 쉬게 해 달라고 빌게 된다고 했다. 보통 사람은 1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9·11 테러를 모의했다고 자백한 알카에다 대원은 183차례, 또 다른 알카에다 대원은 83차례나 워터보딩을 당했다.

CIA 물고문
▶작년 말 상원 군사위 보고서는 2002년 부시 대통령이 "포로와 고문에 관한 제네바협약은 알카에다와 탈레반 수감자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는 메모를 남기면서 사실상 고문을 허가했다고 밝혔다. 관타나모 기지의 고문은 그해 12월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승인했다고 했다. 보고서대로라면 미국 대통령과 장관이 반(反)인권적 행위를 묵인하거나 부추긴 셈이다.

▶부시 정부 인사들은 CIA 고문 메모 공개를 "귀중한 정보를 적에게 설명해준 것"이라고 비난했다. 헤이든 전 CIA 국장은 가혹한 신문 덕분에 알카에다와의 싸움에서 성공을 거뒀고 미국인의 생명을 구했다고 주장했다. 테러 첩보를 다루는 블레어 현 국가정보국장도 상원 청문회에서 워터보딩이 고문이라는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엔 고문조사위와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관련자 문책을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일 CIA 본부를 찾은 오바마 대통령이 고문에 가담한 CIA 수사관들을 기소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과거의 '합법적 직무수행'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안보와 인권 사이에서 찾은 현실적 절충안인 셈이다. 워터보딩은 우리 군사정권 시절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저질렀던 물고문 그대로다. 크메르루주 정권의 전형적 고문수법이기도 했다. 그 잔혹한 고문이 민주주의 교본이라는 미국에서 불과 몇년 전까지 자행됐다는 사실은 미국의 도덕성에 씻기 어려운 상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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